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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책 리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2016)

by 달탄향 2023. 7. 12.

이 책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달리기를 축으로 한 하루키의 문학과 인생에 관한 회고록이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작가의 문학관과 인생관을 풀어냈다. 사실 이 책은 16년 차 동네 러너 박태외(닉네임 막시)님의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라는 에세이를 먼저 읽고 난 뒤에 읽고 싶어진 책이다.

책 표지

책 소개

예스24의 책 소개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서머싯 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 계속하다 보면 나름의 철학이 우러난다는 뜻일 게다. 하루키의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마라톤 풀코스를 25회나 완주한 하루키에게 '달리기'란 삶이자 철학이다. 60세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달리는 하루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글은, '달리기'에 관한 글이자 데뷔 30년을 맞은 그의 문학관과 인생관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달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쓴 소설의 성향이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달리는 소설가 하루키에게 있어 '달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라톤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과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 최초의 회고록에서 우리는 초로의 나이에도 1년에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열정과 근성의 하루키와 만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마음가짐과 실천의 지표가 하루키의 달리는 인생 속에 녹아 있다.

 

러너의 운명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설레고 흥분됐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달리기에 취미를 붙인 나에게는 초반부터 공감이 가는 문장이 많았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나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문체와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하루키처럼 서른세 살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반가웠다. 나도 달리기는 것이 성격에 맞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몇 년째 꾸준히 하는 것 같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러너가 되는 것이 운명적 결정처럼 느껴져서 근사하게 들렸다.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을 받으면 물론 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은 그처럼 단순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리는 것은 근사한 것이니까 모두 함께 달립시다." 같은 말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만약 긴 거리를 달리는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흥미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권한다고 해도 허사일 것이다. 마라톤은 만인을 위한 스포츠는 아니다. 소설가가 만인을 위한 직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거나, 요구를 받아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니다(만류를 당한 적은 있지만). 느낀 바가 있엇 내 멋대로 소설가가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군가 권한다고 해서 러너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이다. (본문 73쪽)

아테네에서 처음 홀로 마라톤하면서 도로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나도 함께 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러너들이 느끼는 프로세스와 매커니즘은 거의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러너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바뀌지 않는 자신의 심적 프로세스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 프로세스가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책임감이 들기도 한다. 멋있는 생각들이 많다.

 

길 위에서 배우는 것들

계속 달려야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본문 116쪽)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 줄 것으로 믿는다. (본문 128쪽)

특히 제4장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었다'에서는 하루키가 소설 쓰는 방법을 매일 아침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작가로서 필요한 자질들을 단련해온 경험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참 노력형 작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작가이다. MBTI 성격 유형으로 따지면 J형(판단형)이 분명하다. 길 위에서 뛰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비단 소설 쓰는 방법뿐만은 아닐 것이다. 길과 인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닮아 있다. 그 이유로 길 위에서 우리는 저마다 깨달음과 가치를 주워가는 것 같다.

 

마치며

트라이애슬론 대회 훈련 이야기 중 사이클 연습과 수영 연습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달리기 외에 이 두 가지 또한 나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아서 선입견 없이 백지 상태로 받아들인 작가의 회고록이었다. 나의 결론은 꽤 괜찮은 책이며, 명성에 걸맞은 작가라는 것이다. 중간중간 눈길이 머무는 문장들이 많았다. 오버스럽지 않고 담담하지만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이 좋았다. 그리고 배경지식이 부족했기에 번역자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동안 달리기에 소홀했던 차에 다시 뛰고 싶다는 욕구를 다시 불러일으킨 책이었다.